카자흐스탄 소개

Ⅰ. 개 관

o 국명 : 카자흐스탄공화국(Republic of Kazakhstan)
o 수도 : 아스타나(Astana, 인구 : 약68만명)
o 면적 : 272만 ㎢(면적 세계9위, 한반도의 12배)
o 인구 : 1,700만명(2014년8월 기준)
o 인종 : 카자흐인(59.2%), 러시아인(25.6%),우크라이나인(2.9%), 우즈벡인(2.9%), 독일인(1.4%), 기타(8%) 등
※ 한민족(고려인)은 약10만(0.7%)으로 8번째
o 종교 : 이슬람교(수니파),러시아 정교
o 언어 : 카자흐語(국어),러시아語(공용어)
o 국내총생산(GDP) : 1,801억불(2011) / 2011년도 GDP 성장률 : 7.5% / 2011년도 1인당 GDP : $13,000
o 화폐단위 : 텡게(Tenge) 환율: 2015년 3월 기준 $1=185~186 텡게
o 주요산업 : 광산업(49.8%), 가공업(41.5%), 에너지 산업(8.7%)
o 주요자원 : 원유(세계 9위, 확인매장량: 400억배럴, 추정매장량 : 1,243억배럴), 아연, 텅스텐(매장량 세계1위),우라늄, 銀, 鉛, 크롬(세계2위), 구리, 망간(세계3위) 등 다수 광물자원 보유
o 독립일 : 1991.12.16
o 행정구역 : 2개 특별시(Astana,Almaty), 14개주

Ⅱ. 약 사

1. 고 대
o 카자흐스탄 내에서 발굴되는 유물들로 미루어 BC 1,500-1,000년경 현재의 카자흐스탄에 청동기 초기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됨.

oBC 500년경 현재의 남부 카자흐스탄에 사카(Saka)부족이 알타이山과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방대한 스텝지역에 거주하여 스키타이 문화의 일부를 이룸.
※사카부족은 카자흐스탄 최고의 고고학적 발굴로 일컬어 지고 있는 “The Golden Man”(금 갑옷을 입은 전사 모형?알마티 인근에서 발굴)을 남긴 부족으로서 Golden Man은 현재 카자흐스탄의 국가 상징

oBC 200년경에는 중국 북부로부터 훈족(Huns)이 현재의 동부 카자흐스탄을 장악한 바 있었으나 훈족이 서유럽으로의 진출을 서두르면서 서기 550- 750년에 걸쳐 몽고와 중국 북부로부터 투르크(Turkic)족이 현재의 카자흐스탄 서부로 이주함.
※투르크족은 만주로부터 카자흐스탄 남부에 이르는 Kok Turk 제국을 구성

2. 카자흐 민족국가 형성(13세기-18세기)
o 1218-1221년경 몽고의 징키스칸이 카자흐스탄 동서부를 시작으로 현재의 카자흐스탄 전역을 석권하였음.
o 카자흐 영토는 Golden Horde, White Horde 및 Mogulistan 으로 분리 통치되었으며 카자흐 카나테(Kazakh Khanate) 가 15세기초 White Horde에서 분리되면서 카자흐 민족국가 형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음.
– 이후 카자흐 카나테는 대올다(Great Horde : 발하쉬 호수 남부지역), 중올다(Middle Horde : 카자흐 중부), 서올다(Little Horde : 카자흐 서부)로 분열되어 호족들이 통치하였으며 3개 올다는 현재 카자흐스탄 호족출신 배경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
o 지방 호족들은 그후 300여년에 걸쳐 3개 올다에 병합되었으며 카자흐는 봉건영주와 농노로 구성된 봉건국가로 18세기까지 존속되어 있었음.

3. 러시아로의 합병(18세기-19세기)
o 봉건제후들간의 전쟁으로 세력이 크게 약화된 3개 올다는 18세기 중엽 중가리(Dzungarian)의 침공으로 소위 대재난의 시대를 맞게 되었으며, 1731년 러시아 제국에 보호를 요청하면서 러시아로의 합병과정이 시작되었음.
o 그후 러시아는 국경지역에 요새와 오렌부르크 등 소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카자흐스탄 서부로 영향력을 확대, 19세기초에는 카자흐스탄 북부와 중부에 러시아식 8개 행정구역이 출현하는 등 러시아의 식민화 정책이 본격화되었음.
o 일부 반러시아 폭동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식민화 정책은 지속되었으며 19세기 초 중 소올다에 대한 직할통치를 시작으로 1860년대에 대올다가 러시아에 편입되어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전역을 합병하였음.

4. 소비에트 정권 수립과 사회주의 건설(1917-1990)
o1917년 볼셰비키 혁명 및 내전 과정동안 카자흐스탄내 소비에트 정권이 신속하게 수립되었으며 1920년 카자흐스탄은 키르기스 자치공화국의 일부로 편입, 소비에트 정권 수립 마무리하였음.
o소련 공산당은 1924-1925년간 중앙아공화국에 민족구성을 기반으로 새롭게 구성된 공화국 구성 개혁안을 추진한 결과, 1925.4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탄생함.
※ 계획경제체제하에서 광물산업을 중심으로 한 카자흐스탄 산업화 및 강압적인 농업 집단화 과정을 본격 추진(1940년대초까지 모든 농장의 97%가 집단농장화)
o1936.12 카자흐스탄은 소련 구성 공화국의 하나로 승격되었음.
o1950년대말 흐루쉬쵸프 공산당 서기장시에 추진된 Virgin Land(처녀지 개간) 정책으로 카자흐스탄 북부에 약80만에 이르는 러시아인들의 이주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식민화가 시작되어 1960년대 초에는 전체 930만 카자흐스탄 인구중 러시아인이 43%, 카자흐인이 29%라는 기형적인 민족구성 초래되었음.
o소련공산당은 샤야흐메토프(Zhumabay Shayakhmetov) 및 쿠나예프(Dinmukhamed Konayev) 등 카자흐인을 카자흐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임명하는 등 카자흐 민족에 대한 일부 배려가 있었으나 실권은 모스크바에서 행사하였음.
※ 1986년 쿠나예프가 러시아인인 콜빈(Gennady Kolbin)으로 교체되자 대규모 폭동 발생
o 소련은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Semipala tinsk)를 핵실험장으로 이용하거나 바이코누르(Baykonur)에 우주선 발사기지를 건설함으로써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함.
– 1989년에는 소련 최초의 대규모 시민운동인 Semipalatinsk Movement가 결성되었으며 동 운동의 결과로 소련은 1989년부터 세미팔라틴스크에서 핵실험을 중지

5.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부상과 카자흐스탄 독립
o 1989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된 나자르바예프는 1990.4 카자흐스탄 최고인민회의에서 카자흐스탄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됨.
o 1990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소련 붕괴 과정에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고르바쵸프 소련 대통령 등과 함께 소련 체제를 유지하려 노력하였음.
– 결국 카자흐스탄은 91.12 Belovezhsk 협정 체결로 소련 체제의 와해가 기정 사실화된 직후 같은 해 12.16 소련 구성공화국중 가장 늦게 독립을 선언하고 같은 해 12.21에는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

6. 카자흐스탄 독립이후 주요일지

카자흐 독립 후 주요일지
카자흐스탄 독립이후 주요일지

Ⅲ. 고려인 약사

* 고려인 현황 : 약 10만명
o 한인들은 1850년대부터 계절농 형태로 러시아의 극동지역으로 이주를 시작하였으며, 당시 극동지역 개발에 부심하고 있던 러시아 제국 정부는 한인들의 정착을 수용함.
o 1917.10 볼쉐비키 혁명이후 스탈린하에서 본격적인 계획경제가 도입되고 농장의 집단화가 추진되면서 한인들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극동지역에서 수십 개의 농업, 어업 콜호즈를 조직하는 등 경제, 사회, 문화적 잠재력을 갖춘 한인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기 시작함.
– 한국어 신문?잡지가 발간되고 라디오 방송, 한인극장, 출판소 등이 운영되었을 뿐 아니라 사범학교, 기술전문학교 등을 설립하여 후진들의 주류사회 진입을 위한 문화적, 교육적 기반을 마련함.
o 소련 정부는 일본과의 긴장이 고조되자 1937년 가을 한인의 중앙아 강제이주를 단행함.
– 1930년대 초 농업집단화와 기근 등으로 250만 명이 사망한 비극을 겪은 바 있는 카자흐인들은 강제 이주된 한인들이 정착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
o 그 후 한인들은 60여년에 걸쳐 소련내에서 다수의 한인 콜호즈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가 하면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다수의 한인들이 소련내 주류사회에 진입하는 등 우수한 소수민족으로 두각을 나타냄.
– 특히, 카자흐스탄에서는 소련에서 유일한 한인종합예술극장인 고려극장, 한글신문인 고려일보(구 레닌기치)를 운영하는 등 중앙아내 고려인 사회를 주도
–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권익보호 등 제반활동에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고려인 협회(회장 김로만)가 있으며, ‘04.12 고려인 회관을 개관함

Ⅳ. 아스타나 소개

가. 아스타나 개관
o 인 구 : 약 76.6 만명(2012.9 기준)
※ 향후 1백만명 규모의 도시로 발전 계획
o 면 적 : 300km²
o 위 치 : 카자흐스탄 북중부 평원
o 역 사
– 1830 : 러시아의 군사전진기지
– 1950 : “첼리노그라드(처녀지의 도시)”로 명칭 변경
※ 소련정부가 스텝지역을 농경지로 바꾸는 “처녀지 정책”에 따라 명칭 변경
– 1992 : “아크몰라”로 명칭변경
– 1997 : 카자흐스탄 수도 이전(종전수도 : 알마티)
– 1998 : “아스타나”로 명칭변경(카자흐어로 “수도”라는 의미)
o 산 업 : 철도, 공업 및 식품가공의 중심지
o 교 통 : 카자흐스탄 횡단철도와 남시베리아 철도의 분기점 (교통의 중심지)
o 자매결연도시 : 14개 도시 / 서울시와 04.11월 자매결연
o 아스타나로 수도이전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타당성 있는 이유는 정치적 고려(카자흐 북부 러시아계 주민 다수 거주)와 국토의 균형 발전에 대한 문제를 고려하였음.

o 2017년 아스타나 EXPO가 예정되어 있으며, 도시 외형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추세임.

Ⅴ. 알마티 소개

가. 알마티시 개관
o 인 구 : 약 146.4만명 (2012.9월 기준)
※ 유동인구 포함 170만명 추산
o 면 적 : 324.8 km²
o 위 치 : 카자흐스탄 남동부
※ 자이리스키ㆍ아라타우산맥(천산)의 600˜800m에 위치
o 역 사
– 1854 : 러시아의 군사전진기지로 자일리스키로 명명(1955 : “베르느”로 명칭 변경)
– 1911 :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
– 1920 : 투르크메니스탄-시베리아 철도 개통, 알마티는 통과지점이 됨
– 1929 : 카자흐 구러시아 연방의 수도
– 1991 : 구러시아연방으로부터 독립, 카자흐스탄의 수도가 됨
– 1998 : 아스타나로 수도 이전 후, 경제수도 명명
o 산 업 : 금융, 문화, 식품가공, 엔지니어링, 출판?제지산업의 중심지
o 교 통 : 2011.12월 지하철 개통/2015년 3월 기준 7개 역을 운행 중이며, 올해 신규역 2개가 추가 개통 예정임.(요금 80텡게)
o 옛 이름 알마아타는 사과의 아버지라는 의미로 알마티는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로서 경제ㆍ문화ㆍ교육의 수도

나. 알마티와 주변에 가 볼 만한 곳

– 박물관: 카자흐스탄 국립 중앙 박물관, 악기 박물관 등 다수 있음.
– 명소: 침블락, 꾹뚜베, 28공원, 고리끼 공원, 국립중앙박물관, 메데우, 신광장, 구광장, 동물원, 서커스 공연장, 어린이 놀이동산, 차린 계곡, 노래하는 사막, 캄차카이 호수, 일리강, 알마라산 등이 있음.

 

VI. 카자흐스탄 휴일 목록

1월 1,2일 – 신정연휴
1월 7일 – 크리스마스
3월 8일 – 국제 여성의 날
3월 22일 – Nauryz : 카자흐스탄 설날
5월 1일 : 카자흐스탄 민족 단합의 날
5월 7일 : 조국 수호의 날
5월 9일 : 승전기념일
7월 6일 : 수도이전 기념일
8월 30일 : 헌법제정일
9월 24일 : 쿠르반 아이트 날
12월 1일 : 초대 대통령의 날
12월 16일 : 독립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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